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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기도문

테필라 2020. 8.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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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기도문

 

하나님은 또 한 달이 시작되었습니다. 아니, 벌써 2주가 지나고 3주째가 되었습니다. 시간은 이렇게 흘러 또 흘러갑니다. 가끔씩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 알 수도 없고, 이해할 수도 없습니다. 삶을 모르니 죽음을 알 수 없고, 죽음을 모르니 삶 또한 이해할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삶은 흘러가고 또 흘러갑니다.

 

높으신 하나님, 때론 주님께서 계신 그곳이 어디인지 궁금할 때가 있습니다. 우리는 하늘에 계신이라고 당신의 거처를 입에 담지만 그것이 과연 옳은지 아니며 알고 하는지도 모릅니다. 당신이 계신 그곳을 모르기에 여기 또한 어딘지 모릅니다.

 

오늘 새벽은 유난히 더웠습니다. 올 여름은 코로나와 폭우로 인해 숨 쉴 틈 없이 하루하루가 지나갔습니다. 금세 끝날 것 같던 코로나 사태는 아직도 현재형이고, 내일을 알 수 없는 모호한 상황 속에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습니다. 오늘 새벽은 무슨 일인지 이해가 되지 않을 만큼 가슴이 답답하고 아팠습니다. 11시에 눈을 감았는데 다시 눈을 뜨니 새벽 1시였습니다. 아무리 눈을 감아도 잠은 오지 않고 계속된 답답함이 잠들지 못하게 했습니다.

 

잠들지 않을 때, 항상 동일한 질문은 당신께 드립니다.

제가 누구입니까?

제가 왜 여기에 있습니까?

무엇을 해야 합니까?

 

얼토당토 않는 질문인 것을 압니다. 그런데 도무지 질문이 바뀌지 않습니다. 여전히 삶이 무엇인지 궁금하고, 제가 누구인지 알고 싶습니다. 제가 질문을 던진다 하던 당신은 답하지 않겠지요? 그럼에도 저는 여전히 당신에게 질문한 것이고, 답 없는 당신께 부르짖을 것입니다.

 

그 옛날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벨론에 있을 때 그러지 않았을까요? 비록 범죄라는 명목이 있었고, 하나님은 징계하셨기에 바벨론에 있게죠. 이러한 거대서가 아닌 개인의 입장에서 존재의 이유를 묻는다면 답하기는 결코 쉽지 않을 것입니다. 질문자는 주님의 징계에 부당함을 느낄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는 항상 주님께 질문하며 살았고, 거룩하고 성실한 하루를 이어왔기 때문입니다. 바벨론 포로란 결과는 그의 삶의 계획 속에는 들어있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그는 바벨론에 있고, 죄 지은 다른 사람들과 동일한 벌을 받고 있습니다. 억울하지 않겠습니까?

 

주님, 작년 이맘때쯤 대구를 떠나 머나먼 ㅇㄱ로 올라갔습니다. 그곳에서 고작 2개 월 반을 지냈고, 어이없게도 다시 나와야 했습니다. 담임목사는 정신병자와 같았고, 장로들은 어리석었습니다. 그렇게 쫓기다시피 다시 ㅁㅍ에 왔지만 여전히 교회는 병들어 있습니다.

 

저도 또 질문합니다.

저를 왜 이곳에 보내셨습니까?

제가 그렇게 죄가 많습니까?

제가 무슨 잘못을 했기에 이렇게 아파해야합니까?

저들을 보십시오. 입을 담을 수 없을 만큼 욕을 해주고 싶은 나쁜 놈들입니다. 정말 그 인간들을 생각하면 참을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당신은 여전히 그들에게 복을 주시고 있고, 특혜를 누리고 있습니다.

당신의 눈으로 똑똑히 보십시오. 그들이 저보다 거룩합니까? 그들이 저보다 열심이 있습니까? 그들이 저보다 최선을 다해 목회를 합니까? 당신이 더 잘 알고, 당신이 더 명확하게 보십니다. 그런데도 여전히 저는 아파하고 무시당하고 슬퍼하고 있습니다. 제가 언제까지 이렇게 살아야 합니까?

 

목마른 사슴처럼 당신을 찾지만 당신은 보이지 않습니다.

독수리에게 쫓기는 참새처럼 당신에게 피하지만 당신은 저를 보호하지 않으십니다.

나의 반석 나의 요새라 고백했던 다윗처럼 당신을 고백해 보지만 당신은 어디에도 계시지 않습니다.

 

! 주님이시여 언제 저의 기도에 응답하시렵니까?

저의 눈은 쇠하고,

저의 무릎은 닳고,

저의 입술을 부르틉니다.

마땅히 가야할 곳도 없고, 평안을 찾을 고향도 사라지고 없습니다. 부유(浮游)하는 인생처럼, 머물지 못하고 떠도나 안식할 곳이 없습니다.

주님, 언제 저는 저의 집을 세울 수 있습니까?

긍휼을 베풀어 주시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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