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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 주일 설교, 베드로전서 1:3 산 소망으로 거듭나게 하신 부활의 은혜

테필라 2025. 4.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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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소망으로 거듭나게 하신 부활의 은혜

부활주일을 맞이하여 우리는 단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 사건을 기념하는 것을 넘어서, 그 부활이 우리 삶에 어떠한 변화를 가져왔는지를 깊이 되새겨야 합니다. 베드로전서 1장 3절은 예수님의 부활이 우리에게 어떤 소망과 정체성을 주었는지를 아주 명확하게 보여주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을 통해 우리는 산 소망의 삶, 은혜로 거듭난 존재로서의 사명을 다시 확인하게 됩니다.

풍성한 긍휼로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말씀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을 찬송하리로다 그의 많으신 긍휼대로." 이 구절은 베드로가 하나님을 향한 찬송으로 서신을 시작하는 방식이며, 복음의 핵심을 담은 감사의 고백입니다. 여기서 '많으신 긍휼'로 번역된 헬라어는 polu eleos로, 하나님께서 단지 긍휼을 가지신 분이 아니라, 그 긍휼이 풍성하고 넘친다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이 긍휼이 없다면 우리는 결코 구원의 은혜에 참여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긍휼은 우리 행위나 공로에 근거한 것이 아닙니다. 전적으로 하나님 편에서 주권적으로 베푸시는 자비입니다. 이 긍휼로 말미암아 우리가 거듭나게 되었다고 말씀합니다. 여기서 '거듭나게 하사'는 표현은 헬라어 anagennaō로, 위로부터 다시 태어나게 한다는 의미입니다. 이는 요한복음 3장에서 예수님께서 니고데모에게 하신 말씀과 맥을 같이하는 개념입니다. 인간은 본래 죄로 인해 영적으로 죽은 자들이지만, 하나님의 긍휼로 말미암아 다시 살아나는 은혜를 입은 것입니다.

이 은혜는 단순한 감정의 위로가 아닙니다. 이는 실제로 우리 존재의 본질을 바꾸는 역사입니다. 우리는 이제 더 이상 이전의 죄인된 정체성으로 살아가지 않습니다. 거듭났다는 것은 완전히 새로운 삶의 출발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그 시작점은 다름 아닌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입니다. 주님의 부활이 없었다면 우리는 결코 거듭날 수 없었고, 긍휼 또한 구체화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죽은 자 가운데서의 부활

본문은 그 거듭남의 원인을 명확히 밝힙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게 하심으로 말미암아." 이는 복음의 중심이며, 신앙의 핵심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단지 죽음을 이긴 승리의 사건이 아니라, 우리 거듭남의 기반이며, 하나님의 의가 드러난 순간입니다.

여기서 '죽은 자 가운데서'라는 표현은 헬라어로 ek nekrōn인데, 이는 예수님의 부활이 단지 죽음에서 회복된 것이 아니라, 완전한 사망의 권세 아래에 있던 자로서 그곳에서 일으켜졌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그 부활은 하나님께서 친히 이루신 역사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죽으셨을 때, 그는 죄 없으신 분이었지만, 우리 죄를 대신하여 죽으셨습니다. 그러나 그 죽음을 하나님께서 다시 살리심으로써, 예수님의 의가 하나님의 인준을 받은 것입니다.

우리는 이 부활을 통해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됩니다. 단순히 죄 사함을 받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존재로 다시 태어나는 것입니다. 부활은 용서의 사건이자 창조의 사건입니다. 우리는 새로운 피조물로서, 이전의 생명이 아니라 전혀 새로운 생명을 부여받았습니다. 이것이 바로 베드로가 강조하는 부활의 능력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죽음을 이기셨고, 사망의 세력에 종지부를 찍으셨습니다. 그리고 그 부활에 참여하는 자들 또한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게 됩니다. 이 세상의 그 어떤 고난도, 심지어 죽음조차도 우리의 소망을 끊을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소망은 이미 부활로 말미암아 확증되었기 때문입니다.

산 소망이 있게 하시며

베드로는 거듭남의 결과를 이렇게 말합니다. "산 소망이 있게 하시며." 여기서 '산 소망'이라는 표현은 헬라어 elpida zōsan입니다. 단순히 살아 있는 소망이 아니라, 끊임없이 역사하며 자라나고 영향력을 미치는 소망이라는 뜻입니다. 이것은 죽은 종교의 형식이 아닌, 살아 계신 주님으로부터 흘러나오는 능동적이고 생동감 있는 소망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희망을 말하지만, 그 희망은 종종 현실의 벽 앞에서 무너지고 맙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의 소망은 살아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 소망의 근거가 살아 계신 예수 그리스도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그 자체로 미래의 보증이 됩니다. 단지 죽음 이후의 천국만이 아니라, 오늘을 살아가는 삶의 방향과 내용이 달라지는 것입니다.

산 소망은 현실 도피가 아닙니다. 오히려 현실을 직시하게 만들며, 그 현실 속에서 믿음으로 살아가게 합니다. 환란 가운데서도 인내할 수 있는 힘, 시험 중에도 낙심하지 않을 수 있는 이유는 바로 이 산 소망에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의 눈은 죽음 너머를 바라보며, 영원한 생명을 바라보며 살아갑니다. 그리고 그 눈길은 오늘 우리의 걸음걸이까지 변화시킵니다.

우리가 산 소망을 붙들고 살아간다는 것은, 곧 부활의 생명을 품고 산다는 뜻입니다. 이것이 부활의 능력입니다. 무덤을 비우신 주님은 오늘 우리의 영혼도 다시 일으키십니다. 우리가 절망할 이유보다, 소망할 이유가 더 많음을 보여주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어떤 상황 속에서도 다시 일어설 수 있습니다. 부활의 아침은 단지 그때의 사건이 아니라, 오늘 우리의 삶에 일어나는 현실이 됩니다.

결론

베드로전서 1장 3절은 복음의 핵심을 담고 있는 축복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풍성한 긍휼로 우리를 거듭나게 하셨고, 그 거듭남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로 가능하게 되었으며, 그 결과 우리는 산 소망을 가진 자로 살아가게 되었습니다. 이 말씀은 단순한 교리가 아니라, 삶의 변화이며, 정체성의 선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부활주일을 맞이하여 우리는 이 산 소망의 사람으로 살아갈 사명을 다시 붙잡아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부활은 우리로 하여금 다시 태어나게 하였고, 그 새 생명은 우리 안에서 소망으로 자라나고 있습니다. 이제 우리는 그 소망을 따라 살며, 부활의 증인이 되어야 합니다.

죽음을 이기신 예수님, 그리고 그 부활로 인해 다시 태어난 우리. 이 복음의 진리가 오늘 우리 삶에 깊이 뿌리내리기를 바랍니다. 산 소망은 우리 안에 있습니다. 이제는 그 소망으로 세상을 살아가는 성도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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