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 주일 설교, 마태복음 28:6 그가 여기 계시지 않고
그가 여기 계시지 않고 살아나셨느니라
부활주일 아침, 우리의 심령을 뒤흔드는 복음의 핵심이 이 한 구절에 담겨 있습니다. 마태복음 28장 6절, 이 짧은 말씀 속에는 인류의 구원을 향한 하나님의 열심, 그리스도의 승리, 그리고 성도의 영원한 소망이 오롯이 스며 있습니다.
그가 여기 계시지 않고
"그가 여기 계시지 않고"라는 말씀은 여인들이 기대한 현실을 전복시키는 선언입니다. 막달라 마리아와 다른 마리아는 예수님의 시신에 향품을 바르기 위해 무덤에 왔습니다. 그들의 기대는 슬픔 속에 있었고, 그 무덤은 죽음과 절망의 장소였습니다. 그러나 천사는 그들의 예상을 깨뜨립니다. "그가 여기 계시지 않고."
이 문장은 단순한 부재의 사실을 넘어, 죽음을 이긴 존재로서의 그리스도의 현존을 선포하는 말씀입니다. 헬라어로 '계시지 않다'는 표현은 ouk estin hōde로, 단순한 장소의 부재가 아니라 본질적인 존재의 변화, 즉 사망 권세로부터의 완전한 해방을 선언합니다. 예수님은 더 이상 죽은 자의 자리에 계실 수 없는 분이십니다. 죽음이 그분을 붙들 수 없었고, 부패와 절망이 그분을 억누를 수 없었습니다.
그리스도의 무덤은 비어 있습니다. 이것은 단지 육체가 사라진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를 다시 살리심으로써 그리스도의 사역을 확증하셨다는 신학적 선언입니다. 이는 우리가 믿는 복음의 중심이며, 사도 바울이 말한 대로 만일 그리스도께서 다시 살아나지 않으셨다면 우리의 믿음도 헛되며 우리는 여전히 죄 가운데 있는 자들입니다(고전 15:17).
무덤은 더 이상 슬픔의 상징이 아닙니다. 무덤은 이제 승리의 증거입니다. "그가 여기 계시지 않고"는 우리 삶 가운데 절망과 두려움, 죄와 사망이 자리할 자리를 잃게 만드는 복음의 선언입니다. 예수께서 계시지 않는 자리는 우리가 여전히 머무르고 싶어하는 고통과 과거의 자리가 아니라, 새 생명이 시작되는 공간입니다.
말씀하시던 대로 살아나셨느니라
"말씀하시던 대로"라는 표현은 예수 그리스도의 약속과 예언이 성취되었음을 강조합니다. 예수님은 공생애 기간 동안 여러 차례 자신의 죽음과 부활을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마태복음 16장 21절, 17장 23절, 20장 19절 등에서 반복해서 죽으실 것과 사흘 만에 살아나실 것을 밝히셨습니다.
여기서 헬라어로 "말씀하시던 대로"는 kathōs eipen이라는 구문인데, 이는 단순한 과거의 발언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언약적 말씀, 선지자적 예언의 성취를 내포하는 표현입니다. 이 말씀은 인간의 말처럼 허공에 흩어지는 말이 아니라, 반드시 이루어지는 하나님의 살아있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죽음조차도 하나님의 말씀을 막을 수 없다는 사실을 몸소 보여주셨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예언의 성취이며, 하나님의 언약은 변하지 않는다는 확증입니다. 따라서 부활은 돌발적 사건이 아니라 하나님의 구속 사역의 일관된 역사 속에 배치된 필연적 결과입니다. 이는 교회가 붙들어야 할 신앙의 기초입니다.
오늘 우리가 이 말씀을 들을 때, 단순히 역사적 사건의 기록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지금 내 삶 속에서 하나님이 하신 약속이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는지를 돌아보아야 합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우리에게 여전히 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사는 삶이 어떤 능력과 소망을 가지는지를 증명해 줍니다.
살아나셨느니라
이 말씀의 중심은 "살아나셨느니라"입니다. 헬라어로는 ēgerthē라는 수동태 동사로, 이는 예수님이 스스로 살아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일으키셨다는 사실을 강조합니다. 이는 삼위일체 하나님의 공동 사역 가운데 아버지께서 아들을 다시 살리셨다는 점에서 깊은 신학적 의미를 지닙니다.
부활은 단순한 생물학적 회복이 아닙니다. 그것은 완전히 새로운 차원의 생명, zōē aiōnios 영원한 생명의 시작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죽은 자 가운데서 일어난 첫 열매(고전 15:20)로서, 장차 우리도 이 부활에 참여하게 될 것을 약속하십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은 이 부활의 능력 안에서 살아가는 삶입니다. 죽음 앞에서도 담대할 수 있는 이유는, 예수님께서 살아나셨기 때문입니다. 죄의 권세 앞에서도 무너지지 않는 이유는, 그분의 생명이 우리 안에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부활로 말미암아 전혀 새로운 피조물로 살아가게 되었습니다.
오늘 우리의 현실이 무덤처럼 닫힌 어둠 속에 있을지라도, 부활하신 주님은 이미 그 문을 여셨습니다. 그 문은 우리가 나아갈 수 없는 곳, 인간의 절망이 끝나는 자리를 넘어섭니다. 그러므로 부활은 단지 교리나 사건이 아니라, 우리 안에서 역사하는 현재의 능력이며 소망입니다.
결론
마태복음 28장 6절은 부활주일에 우리가 다시 붙들어야 할 복음의 정수입니다. "그가 여기 계시지 않고 말씀하시던 대로 살아나셨느니라" 이 말씀은 죽음의 자리에서 생명을, 절망의 자리에서 소망을, 죄의 자리에서 구속의 능력을 선포하는 살아있는 진리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제 우리는 빈 무덤 앞에 서 있습니다. 그분이 계셔야 할 자리에 그분은 계시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분은 살아나셨기 때문입니다. 이제는 우리가 부활의 삶을 살아야 할 차례입니다. 죄와 두려움에 묶인 삶을 벗고, 부활의 소망을 안고 담대하게 살아가야 할 시간입니다.
부활은 끝이 아니라 시작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살아나셨기에, 우리도 살아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부활이 내 삶에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를 깊이 묵상하며, 이 부활의 아침을 맞이하는 모든 이의 마음 위에 주님의 생명과 평안이 가득하길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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